PASSIONISTA/GUYS OF PASSION 2016.04.21 14:06

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의 이야기


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의 이야기

GOD OF GAME : MIYAMOTO SHIGERU



'게임의 기본 문법을 제시한 인물', '닌텐도 혁신의 대표 아이콘', 그리고 '마리오의 아버지'까지. <미야모토 시게루>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러나 이 모든 수식어는 결국 '게임의 신'이라는 하나의 표현으로 종결된다. 그만큼 미야모토 시게루는 전 세계 유수의 개발자에게 게임 제작에 대한 영감을 제공했고, 게임 자체를 성별과 세대를 초월한 '문화'로 각인시키는 데 어마어마한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지난 1977년 닌텐도에 입사해 올해로 39년째 둥지를 틀고 있다. 글로벌 게임산업의 거대한 축을 이룬 닌텐도의 역사와 함께 인생을 살아온 셈. 누군가는 "닌텐도가 없었으면 미야모토 시게루도 없었을 것"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사실 상황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날개를 펼칠 수 있었던 건, 격동의 세월 속에서 '게임'으로 돌파구를 찾은 닌텐도의 사업 방향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닌텐도 역시 미야모토 시게루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굳이 '옳은 표현'을 쓰자면 "미야모토 시게루와 닌텐도는 하나다"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올해로 그의 나이 64세. 아직도 '게임의 역사'를 쓰고 있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열정에 대해 알아보자.




1952년 11월, 미야모토 시게루는 일본 교토 외곽 소노베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아이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동네 친구들과 산골짜기를 뛰어다니며 자연과 어울리며 놀았다. 집에는 TV가 없어 가끔 아버지와 도시로 나가 '백설공주'나 '피터팬'같은 인형극을 본 것이 거의 문화생활 전부였다고 한다. 여기서 그의 첫번째 키워드 '모험심'이 자라나게 된다.


중학교 시절 미야모토 시게루는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다는 교사의 칭찬에 만화에 관심을 두게 된다. 데즈카 오사무 같은 일류 만화가가 될 결심을 하고, 쉬지 않고 그림연습을 했지만 결국 한계를 느끼고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여기서 그의 두번째 키워드 '만화'가 생겨나게 된다.


1970년, 정든 교토를 떠나 가나자와 미술공예대학에 입학한다. 예술적 관심과 공학적 감각을 모두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전공을 공업 디자인으로 정하게 된다. 그의 대학시절은 그야말로 자유였다. 특히 음악. 밴드 동아리에서 기타를 쳤고, 여기에 너무 빠져 '프로 음악가'라는 또 다른 꿈까지 가졌을 정도였다. 그 결과 수업의 반도 채우지 못해 유급까지 당했고, 부모님으로부터 혼쭐이 난 뒤에야 정신을 차리게 된다. 이후 공부에 전념해 5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다. 여기서 생긴 그의 세번째 키워드는 '음악'이다.


대학을 졸업한 미야모토 시게루는 하루하루 똑같이 반복되는 평범한 삶을 살기 싫었고, 고민 끝에 완구업체에서 장난감을 만들기로 한다. 당시 일본에서는 닌텐도가 제작한 '광선총'이 인기를 끌고 있었고, 미야모토 시게루는 아버지 지인의 추천으로 닌텐도에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당시 닌텐도는 디자이너가 필요 없었지만, 미야모토 시게루의 장난감 포트폴리오에 만족했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그를 채용하기에 이른다.





3년 뒤, 회사에서 사내 공모전이 열리자 미야모토 시게루도 관심을 보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차피 '즐거운 일'이 하고 싶어 닌텐도에 입사했는데, 꼭 완구가 아닌 '게임'도 즐거울 거 같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인기 애니메이션 <뽀빠이>를 기반으로 한 게임의 아이디어를 냈다. 닌텐도 입장에서는 아케이드 기기 재고 처리가 목적이었던 만큼, 북미에서 인기가 있던 <뽀빠이> 기반의 게임은 최적의 아이디어였다. 이렇게 미야모토 시게루의 아이디어는 채택됐고, 난생처음으로 '게임'이라는 녀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이후 그는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내며 게임 하나를 만들어낸다. 3개월 뒤, 그 결과물이 나왔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동키콩>이다. 1980년, 북미에 발매된 <동키콩>은 1년 만에 5만 대가 판매되는 등 그야말로 '대박'을 일궈냈다.



<동키콩>의 성공 이후 미야모토 시게루는 한 가지를 깨닫는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그의 관심 분야, 그리고 '즐거움'까지. 이 모든 것을 충족할 수 있는 수단, 그리고 자신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그것'의 정체를 흐릿하게나마 깨달았던 것이다. 이렇게 그는 게임을 만났다.


미야모토 시게루를 이야기하면서 '마리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마리오'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창조해낸 캐릭터 중에 가장 유명하며, 그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동키콩>을 제작할 당시 게임제작에 전혀 감이 없었다. 원래 <뽀빠이>의 캐릭터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제작사로부터 사용권을 거부당해 직접 캐릭터를 만들기로 했다. 과거 음악에 심취했던 시절을 떠올려, 게임에 쓰일 음원까지 직접 연주해 붙여 넣을 정도였다.



캐릭터를 일부러 뚱뚱하게 표현한 것도 유명하다. 훗날 미야모토 시게루는 '뚱뚱하고 못생긴 남자가 영웅이 돼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로망'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얼마나 순수하게 접근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붉은 모자에 주먹코, 입을 감싼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붉은색 멜빵바지를 입은 '점프맨'이 탄생했다. 보잘것없던 이 캐릭터는 <동키콩> 이후 인기가 치솟아 '마리오'라는 정식 이름을 달게 된다.


<동키콩>의 성공으로 회사에 신임을 얻은 미야모토 시게루는 1984년, 닌텐도 정보개발부 4팀의 리더로 임명된다. 그의 나이 고작 32세였다. 이때부터 그는 가정용게임기 소프트웨어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이후 그가 제작해 내놓은 게임이 바로 그 유명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와 <젤다의 전설>이다. 두 게임은 명성은 판매량이 증명해준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1,000만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했고, 전체 시리즈는 무려 2억 6,000만장을 돌파하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젤다의 전설>은 발매 이후 650만장을 돌파했고, 전체 시리즈는 4,200만장이 팔리며 닌텐도의 '별'의 하나로 군림하게 됐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이 두 가지 게임으로 크리에이터로서 글로벌 명성을 쌓게 된다. 그렇다면 두 게임은 어떤 배경으로 만들어졌을까? 독특하게도, 두 게임 모두 그의 지난 '경험'과 '순수한 시각'에서 비롯됐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핵심은 '점프'에 있다. 점프로 벽을 넘거나 부수고, 점프로 악당을 물리치고, 점프로 공주를 구해낸다. 검은색 배경화면 대신 하늘을 넣어 화사함을 더했고, 주인공 '마리오'의 이동에 따라 화면이 움직이는 현재 횡스크롤 게임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아냈다. 또, 아파트 파이프라인이 지하로 연결되는 부분에서 착안, 게임 내 이를 도입했다. 파이프라인에 들어가는 일종의 '비밀장소'를 넣은 셈이다.



또, 어린 시절 그가 즐겨 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얻어 버섯을 먹으면 몸이 커지는 부분까지, 게임은 단순했지만 즐거운 요소는 <동키콩> 그 이상으로 구현됐다. 우리에게 친숙한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이렇게 탄생했다. 당시 미야모토 시게루는 카트리지 교체식 가정용 게임기의 마지막을 감안하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만들었지만, 이 게임으로 인해 카트리지 교체식 가정용 게임기 시대가 오히려 개막하게 됐다.



<젤다의 전설>은 게임이라기보다 '예술작품'으로 불리는 걸작이다. 이 게임은 동화 같은 스토리, 모험, 그리고 액션이라는 요소를 한데 묶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는데, 게임으로 즐길 수 있는 가장 흥미진진한 요소를 한 번에 담아내려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게임 감각'이 잘 녹아나는 대목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 시대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귀감이 되는 <젤다의 전설>은 역사상 가장 완벽한 게임, 게임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 등으로 평가됐다.





두 게임이 가진 의미는 크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는 횡스크롤 액션으로 <젤다의 전설>은 액션 어드벤처로 당시 수많은 개발자에게 '게임 문법'에 대한 어마어마한 영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상업성과 작품성 모두 잡아낸 것도 진귀한 기록이다. 두 게임은 앞서 언급했듯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기록했음은 물론, 각종 게임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특히 닌텐도64용으로 출시된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는 일본의 권위 있는 게임잡지 <패미통>으로부터 역사상 최초 만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건 바로 상징성이다. 두 게임의 어마어마한 성공으로 닌텐도는 글로벌 게임사로 점쳐졌고,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와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닌텐도의 상징적인 마스코트가 됐다. 전 세계 가정에는 '게임'으로 웃을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됐고, 이로 인해 483억 달러 규모(글로벌, 2011년 기준)의 비디오게임 시장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게임을 만들었지만, 사실 그것을 창조했다고 보는 게 옳다"는 빌 로퍼의 말이 새삼 수긍된다. 이렇게 신(神)은 탄생했다. 그리고 60이 넘은 나이에도 계속해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음번에 보여줄 신의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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