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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IONISTA/GUYS OF PASSION

제주유나이티드 박경훈 감독, 부드러운 열정이 만든 꼴찌팀의 기적

박경훈 감독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지만 지난 시즌 K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제주 유나이티드 박경훈 감독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우승팀 못지않았다.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는 약팀의 대명사였다. 2007년 11위, 2008년 10위, 2009년엔 15팀 중 14위를 했다. 그렇게 무기력하던 제주가 박경훈 감독의 부임 이후 갑자기 변했다. 2010년 시즌 홈무패 기록을 달성했고, 정규리그에서도 15개 구단 가운데 최소패를 기록했다. 결국, 준우승으로 시즌을 최종 마무리했다. 그리고 준우승팀으로는 최초로 감독상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박경훈 감독이 제주를 처음 맡았을 때 그를 주목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박경훈 감독은 축구는 멘탈 스포츠임을 강조하며 선수단의 화합을 잘 이끌어 내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는 약속을 단 1년 만에 지켰다. 현실이 된 제주의 드라마틱한 스토리. 박경훈 감독의 리더십 뒤에는 어떤 힘이 숨겨져 있을까?

그는 사실 실패를 겪은 지도자다. 어릴 때부터 육상 단거리, 중거리, 멀리뛰기 가리지 않고 1등을 도맡았던 박 감독은 대구 청구고 때 처음 축구를 시작했다. 급격히 기운 가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숙소 생활을 하는 축구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축구를 시작하자마자 성공 가도를 달렸다. 곧장 주전을 꿰찼고 축구 입문 3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1986년 아시안컵 우승 멤버로 어딜 가나 스타 대접을 받았다. 선수 시절, 허정무 감독과 함께 대표적인 승부사로 꼽히며 아무리 쓰러져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 해서 '오뚝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근성과 승부욕으로 똘똘 뭉친 선수였다.


 

박경훈 감독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벨기에전 스타팅 멤버. 두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박경훈 선수


'선수 박경훈'의 그 근성은 지도자가 되어서도 어디 갈 리 없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2007년 윤빛가람이 뛰던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고 국내에서 열린 U-17월드컵에 출전했다. 그의 지도 철학은 '강한 조련'이었다. 근성을 늘 강조하며 강인한 팀을 만들기 위해 해병대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선수들에게는 ‘고통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단골로 했다. 그런데 자신의 지도 방법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한국의 조별라운드 탈락이 확정되고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고 난 뒤였다. 홈에서 당한 망신에 팬들의 비난은 거셌고 '박경훈은 축구판에서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다. K리그 프로팀 감독으로 멋지게 데뷔하고 싶었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후, 박 감독은 2008년 전주대학교 축구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그는 자신에게 큰 상처로 남은 당시의 실패가 지도자 인생에 큰 경험이 됐다고 한다. 강단에서 보낸 2년이 지도자로 한 단계 올라서는 데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기다리는 법을 배우며 한발 물러나 축구를 보니 자연히 시야가 넓어지게 되었다.


눈앞의 결과에만 연연해 이기고자 했고, 이기기 위해 선수들을 다그치고 서둘렀던 그가 스스로 변했다.
강함을 이기는 것은 부드러움이라는 것을 깨달은 박경훈 감독. 승리에 대한 욕심을 비우고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갖고 기다리는 것이 기술이나 전술 하나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박경훈 감독은 제주를 맡아 그 배움을 적용하게 되었다.

박경훈 감독,구자철

박 감독은 늘 선수들에게 좋은 선수들이라는 확실한 자신감을 심어주고자 노력했고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당장 팀을 바꾼다는 욕심을 버린 뒤 선수들이 스스로 자신의 기량을 깨우치길 기다렸다. 그러자 선수들이 속에 있던 자신감을 찾았고 그제야 갖고 있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 감독은 선수들 하나하나의 장점을 일러주고 그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아주어 숨어 있는 잠재력을 발산케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칭찬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실수를 지적하다 보면 경기장에서 위축되게 마련이다. 창의적인 플레이를 위해서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화내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박 감독의 칭찬은 실패한 선수들도 춤추게 했다. 김은중은 13골, 9도움으로 생애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김은중은 “감독님을 만나 내 실력이 크게 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감독님은 경기장에서 내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해 주셨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경훈 감독 리더십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부임 직후 박감독은 최고 수준의 지도자 라이선스인 '프로패셔널 지도자 코스(P급 라이선스)'를 이수해 자격을 획득했다. '공부하는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새 도전에 임한 박경훈 감독은 여전히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지금이 아닌 10년 후를 앞서 갈 수 있는 축구를 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책이나 비디오와 씨름하며 새로운 축구의 흐름을 먼저 찾아내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분명히 새로운 길이 있을 거라며 그 길을 자신이, 그리고 제주가 먼저 걸어 보겠노라고 말했다.
공부하는 감독 박경훈 감독의 '돌'처럼 단단한 축구, '바람'처럼 빠른 축구, '여자'처럼 아름다운 축구. 제주 박경훈 호의 삼다(三多) 축구는 올해도 계속된다. 아름답고 창조적인 플레이로 팬들이 모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축구를 선보이겠다고 다짐했다.

박경훈 감독을 이야기할 때 '패셔니스타'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다. 넥타이나 머플러 등 소품에 포인트 컬러를 사용할 줄 아는 패셔니스타다. 특히 제주를 상징하는 주황색 컬러를 포인트로 자주 활용한다.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복근까지 잘 관리한 몸매도 패션에 한 몫 하고 있다.

축구계의 패셔니스타 박경훈 감독

패션 디자이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패션 흐름을 파악하고 미용실에 가서도 패션 잡지를 보며 매치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그의 노하우. 미술을 배웠던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항상 간결하고 깨끗하게 입는 것은 물론 공인으로서 남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박 감독은 "감독이라는 자리는 팀의 얼굴이 아닌가. 이왕이면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팬들에 대한 서비스이자 배려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패션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축구계의 패셔니스타 박경훈 감독


이처럼 남다른 패션 감각과 눈에 띄는 백발에 푸근한 미소까지. 외형적으로도 인상적인 박경훈 감독의 내실 있는 진보는 앞으로의 프로 축구, 나아가 한국 축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축구를 선보인 박경훈 감독이 이번 시즌 제주 축구에 또 어떤 희망을 안겨다 줄지 더 기대되고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