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배우의 전형,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 그의 삶과 캐릭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열정


<아이언맨> 이후 작품으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접한 젊은 관객들은 '중년의 슈퍼히어로'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굴곡 많은 삶은 할리우드 스타의 음지와 양지의 최대치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그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에 대해 알아봅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John Downey Jr.)는 미국의 배우, 영화 제작자, 극작가이자, 싱어송 라이터, 코미디언입니다. 스크린 데뷔작은 1970년 만 5세 때 아버지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의 영화 작품 <파운드>였죠. 일찍이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의 예측이였을까요, 아니면 단순한 제작비 절감 차원이였을까요? 그건 아마 아버지만 알고있을 겁니다.



그 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한결같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화 <신비의 체험, 1985>, <환상의 발라드, 1987>등 같은 청춘물에 출연을 시작으로 <회색 도시, 1987>에서 마약에 빠진 젊은 청년을 연기해 처음으로 비평가에게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



영화 <채플린, 1992>에선 찰리 채플린 역을 연기해 1993년에 미국 아카데미상에 첫 후보지명되었고, 영국 아카데미상(BAFTA)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열정을 가지고 임한 영화였다'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직접 언급했을 만큼 그에게 많은 영감과 깨달음을 준 영화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비로소 배우라는 직업에 열정을 갖게 된거죠.



<채플린>은 내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공동체와 예술, 유머와 유머 뒤에 있는 슬픔에 대해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


하지만, 안타깝게도 1996년부터 2001년 사이에는 자주 마약과 관련된 일로 체포당했고 마약 재활치료에 참여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을 시기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 의하면, 그가 처음 마리화나를 접한건 8살 때라고 합니다. 집안에서 파티를 하던 중 아버지가 줘서 피운거죠. 아버지의 자유분방함 훗날 그를 힘들게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나봅니다. 이후 다우니 주니어는 10대 시절부터 마약을 했고, 누나인 앨리슨도 15세 때 코카인에 중독되는 등, 가족들 모두 마약으로 인해 순탄치 못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2000년에 미국 황금 시간대에 방영하는 FOX 미니시리즈 <앨리 맥빌>(앨리의 사랑 만들기)에서 변호사 '래리 폴' 역을 맡아 골든 글로브상 TV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프라임타임 에미상 코미디 부분 최우수 남우조연상 후보에 지명 되며 재기에 성공함과 동시에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또한 마약 중독을 모두 떨쳐내버린 2004년에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보여준 앨범 더 퓨쳐리스트(The Futurist)를 발매하기도 했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가수가 되기에도 충분한 멋진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직접 그의 목소리를 느껴보고 싶다면 그의 앨범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네요.



그리고 드디어 2008년, 마블 코믹스의 인기 슈퍼 히어로인 영화 <아이언 맨>에서 주연 '토니 스타크/아이언 맨'을 연기해, 개봉한 첫 주에 9천 9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아이언 맨 2>, <어벤져스>, <아이언 맨 3>에서도 연이어 주연을 맡아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성공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턴, 여러분들이 아시는대로 그야말로 승승장구를 거듭했죠.



할리우드 역사에서 그처럼 'UP AND DOWN'이 심했던 인물은 아마도 없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가능성을 지닌 배우였고, 지인들은 그의 재능이 약물에 의해 사라져 버릴까 노심초사했습니다. 30대 후반까지 그의 경력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의 상태였죠.



5세에 아버지 영화에 출연한 것부터 시작하면 40년 이상, 10대 배우 시절부터 시작하면 30년 이상이 된 그의 배우 경력은 크게 다섯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 첫 번째 시기는 1986년까지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단역과 조연을 전전하다가 SNL에서 실패를 맛보았던 '무명기'
  • 두, 세 번째 시기는 1987~1995년의 시기로, <회색 도시>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 받고 <채플린>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상승기', 혹은 마약 살 돈을 벌기 위해 아무 영화에나 출연했던 '위기의 잠복기'
  • 네 번째 시기는 1996~2002년, 그가 감옥과 재활원을 오가며 영화를 찍었던, 할리우드 최고의 '문제적 인간으로 부상하던 시기'
  • 다섯 번째 시기는 컴백한 2003~2007년, 주가를 서서히 높이더니 2008년 <아이언맨>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제 2의 전성기'를.
어떻게 보면 그의 부활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였습니다. 영화 캐릭터에 대한 열정,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 덕에 지금의 로버트 다우니가 있을 수 있던게 아니였을까요?



그리고 곧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캐릭터에 대한 열정이 가득 담긴 또 하나의 히어로 무비,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가 4월에 개봉합니다. 이번에도 그의 천재성이 담긴 연기력이 폭발할지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부디 그 열정이 마약에 의해 사그러들지 않길 바라며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의 개봉일을 기다려봅니다. SIEG ˚F



지이크 파렌하이트는 '승리'라는 의미를 가진 SIEG와 '화씨'라는 뜨거운 열정의 의미를 가진 FAHRENHEIT가 만나 삶의 열정적 승리를 꿈꾸는, 젊은 남성을 응원합니다. 지이크 파렌하이트 공식 블로그의 GUYS OF PASSION 카테고리는 이러한 열정적인 남자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열정을 배우기위해 시작되었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